판시사항
[1] 상표권자의 등록상표가 표시된 상품의 소유자가 개인적 사용을 목적으로 그 상품을 다른 형태의 제품으로 변형·가공하는 이른바 리폼(alteration, customizing 또는 upcycling 등) 행위를 하는 경우, 리폼 제품에 상표를 표시하는 행위 등이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여 상표권 침해가 성립하는지 여부(원칙적 소극) / 리폼 행위를 업으로 영위하는 자가 소유자로부터 개인적 사용을 목적으로 한 리폼 요청을 받아 그에 따른 리폼 행위를 하고 리폼 제품을 소유자에게 반환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인지 여부(적극)
[2] 예외적으로 리폼 행위를 업으로 영위하는 자의 리폼 행위에 수반되어 이루어진 상표 표시 행위 등이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여 상표권 침해가 성립할 수 있는 경우 및 그 판단 기준과 증명책임의 소재(=상표권자) / 그 밖에도 소유자가 상표권 침해행위를 할 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데도 리폼 행위를 업으로 영위하는 자가 리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행위에 관여한 경우, 상표권 침해에 따른 공동의 법적 책임을 부담하는지 여부(적극)
판결요지
[1] 상표권자의 등록상표가 표시된 상품의 소유자가 개인적 사용을 목적으로 그 상품을 다른 형태의 제품으로 변형·가공하는 이른바 리폼(alteration, customizing 또는 upcycling 등) 행위를 하는 경우, 그 리폼 제품이 상거래에 제공되어 거래시장에서 유통되지 않고 개인적 용도로만 사용되는 한 리폼 제품에 상표를 표시하는 행위 등은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상표권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 한편 리폼 행위를 업으로 영위하는 자(이하 ‘리폼업자’라 한다)가 소유자로부터 개인적 사용을 목적으로 한 리폼 요청을 받아 그에 따른 리폼 행위를 하고 리폼 제품을 소유자에게 반환한 경우에도 리폼업자가 리폼 제품에 상표를 표시하는 행위 등은 원칙적으로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지 않아 상표권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상표법은 상표를 보호함으로써 상표 사용자의 업무상 신용 유지를 도모하여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수요자의 이익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상표법 제1조). 상표는 자기의 상품과 타인의 상품을 식별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표장이고(상표법 제2조 제1항 제1호),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는 업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업무표장(상표법 제2조 제1항 제9호)과는 구별된다. 상표가 표시된 상품은 상거래에 제공되는 물품이어야 함이 전제되고, 이러한 상품이 거래시장에서 유통되면 수요자는 상표를 통해 상품의 출처를 식별하게 된다.
이처럼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은 상표가 표시된 상품이 상거래에 제공되어 거래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황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상표의 사용이 상품이 상거래에 제공되는 과정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점은, 유럽연합 상표규정(European Union Trade Mark Regulation) 제8조 제4항, 제9조 제2항의 ‘상거래 과정에서의 사용(use in the course of trade)’ 요건이나 미국 연방상표법(15 U.S.C.) 제1114조, 제1127조의 ‘상업적 사용(use in commerce)’ 요건에서 알 수 있듯이 국제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상표의 사용이 상품의 거래시장 유통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점은, 상표의 출처 식별 기능 등을 보호함으로써 거래시장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유지하고 이로써 그 거래시장에서 수요자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상표법의 경쟁법적 성격에서 비롯된다.
②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을 이와 같이 해석하는 이상, 어떤 물품에 관한 상표 표시 행위 등이 그 물품을 상거래에 제공하여 거래시장에서 유통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물품을 개인적 용도로만 사용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상표의 사용이 있었음을 전제로 하는 상표권 침해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 이는 개인적 영역에 국한된 상표의 사용은 거래시장에서 보호되어야 할 상표권자의 업무상 신용이나 수요자의 이익은 물론 거래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질서와도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소유자가 구매한 상품을 개인적 사용 목적으로 리폼하는 과정에서 상표 표시 행위 등이 이루어진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③ 상표권자가 국내에서 등록상표가 표시된 상품을 적법하게 양도한 경우, 그 상품에 대한 상표권은 목적을 달성하여 소진되는 것이 원칙이다. 이에 따라 상품 소유자는 상표권의 제약을 받지 않고 소유권 행사의 자유에 기초하여 그 상품을 자유롭게 사용, 수익, 처분할 수 있다. 이러한 소유권 행사의 범위에는 원칙적으로 상품에 대한 리폼 행위도 포함된다. 다만 리폼의 정도가 리폼 전 제품과의 동일성을 해할 정도에 이르러 실질적으로 새로운 제품을 생산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면 상표권 소진 원칙은 적용되지 않으므로, 리폼 행위로 인한 상표권 침해가 여전히 문제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리폼 제품이 상거래에 제공되어 거래시장에서 유통되지 않고 개인적 용도로만 사용되는 한, 리폼 과정에서 이루어진 상표 표시 행위 등은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때 상품 소유자가 리폼 전 제품 및 리폼 제품의 소유권을 계속 보유하고 있다면 리폼 전 제품을 리폼 제품으로 변형·가공하는 일련의 리폼 행위 역시 소유권 행사의 자유로서 정당화될 수 있다.
④ 상표법의 관점에서 등록상표가 표시된 상품에 대한 리폼 행위의 허용 여부와 그 범위를 정할 때에는 리폼 행위의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리폼 행위는 다양한 목적과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소유자가 자신의 개성이나 취향을 표현하거나, 폐기 대신 재활용(recycling) 또는 새활용(upcycling)을 통해 제품 수명을 연장하려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리폼 행위는 소유권 행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소비자 후생 증대, 자원 순환이용을 통한 환경적 지속 가능성(environmental sustainability) 확보 등의 가치와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리폼 행위와 관련된 상표권 보호 범위는 상표권자의 이익 외에도 위와 같은 다양한 가치들을 함께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획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개인적 사용 목적의 리폼 행위를 허용하는 것은 리폼 행위를 둘러싼 여러 가치와 이익을 조화롭게 고려한 균형 있는 해법이 될 수 있다.
⑤ 개인적 사용을 목적으로 한 소유자의 리폼 행위를 허용하는 이상, 이를 소유자가 스스로 리폼 행위를 하는 경우로만 한정할 이유가 없다. 리폼 작업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동, 전문성과 기술력이 요구되어 소유자가 스스로 리폼 행위를 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소유자가 스스로 하는 리폼 행위만 허용하고 제3자를 통한 리폼 행위는 금지한다면, 소유자에게 허용된 리폼 행위의 자유는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못한 채 형식적인 선언에 그칠 우려가 있다. 리폼 과정에서 제3자의 조력을 받거나 제3자로 하여금 리폼 행위를 대행하게 하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소유권에 기초한 정당한 권리 행사의 모습이고, 이를 소유자가 스스로 리폼 행위를 하는 것과 달리 취급할 만한 뚜렷한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
⑥ 개인적 사용을 목적으로 한 소유자의 리폼 행위에 관한 법리는 리폼업자의 상표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도 반영될 필요가 있다. 소유자의 개인적 사용을 위한 요청에 따른 리폼업자의 리폼 행위가 비록 업으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이는 소유자가 리폼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소유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소유자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결과물 역시 소유자의 개인적 사용 영역으로 귀속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리폼 과정에서는 리폼 전 제품과 리폼 제품의 소유권이 시종일관 리폼 전 제품의 소유자에게 있고, 리폼업자가 수령하는 대가 역시 리폼 제품의 판매 대가가 아닌 리폼 서비스 제공에 대한 대가에 가깝다. 이러한 점에서 소유자와 리폼업자 사이의 거래는 거래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의 거래라기보다는 궁극적으로 소유자의 개인적 사용 영역으로 흡수되는 거래로 평가할 수 있다.
[2] 다만 형식적으로는 리폼 행위를 업으로 영위하는 자(이하 ‘리폼업자’라 한다)가 소유자의 요청에 따라 소유자의 개인적 사용을 위하여 리폼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보이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리폼업자가 일련의 리폼 과정을 지배·주도하면서 리폼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등 이를 자신의 제품으로서 상거래에 제공하여 거래시장에서 유통되게 하였다고 평가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리폼업자의 리폼 행위에 수반되어 이루어진 상표 표시 행위 등이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여 상표권 침해가 성립할 수 있다. 이러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는 소유자의 리폼 요청 경위와 내용, 리폼 제품의 목적, 형태, 개수 등에 관한 최종적 의사 결정의 주체, 리폼업자가 수령한 대가의 성격, 리폼 제품에 제공된 재료의 출처, 그 재료가 리폼 제품에서 차지하는 비중, 리폼 제품의 소유관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이러한 특별한 사정에 대한 증명책임은 리폼업자의 행위가 상표권 침해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상표권자에게 있다. 그 밖에도 소유자가 개인적 사용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상거래에 제공하여 거래시장에서 유통되게 할 목적으로 등록상표가 표시된 상품에 대한 리폼 행위를 요청하는 등 상표권 침해행위를 할 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데도 리폼업자가 리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행위에 관여하였다면, 그는 상표권 침해에 따른 공동의 법적 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
판례내용
【원고, 피상고인】 ○○○ 말레띠에 (소송대리인 변호사 조태연 외 4인)
【피고, 상고인】 피고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봄 담당변호사 김철식 외 2인)
【원심판결】 특허법원 2024. 10. 28. 선고 2023나11283 판결
【주 문】
원심판결 중 주위적 청구에 관한 피고 패소 부분과 이에 해당하는 예비적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특허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난 다음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 등의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에서)를 판단한다.
1. 사안의 개요
원심판결 이유와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 등에 따르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원고는 1994. 7. 1. 표장을 "(표장 1 생략)", 지정상품을 ‘상품류 구분 제18류 숄더백, 핸드백, 비귀금속제 지갑 등’으로 하는 상표등록출원을 하여 1995. 12. 26. 상표권 설정등록[상표등록번호 (등록번호 1 생략)]을 받고, 1983. 8. 5. 표장을 "(표장 2 생략)", 지정상품을 ‘상품류 구분 제25류 지갑, 핸드백 등’으로 하는 상표등록출원을 하여 1985. 1. 17. 상표권 설정등록[상표등록번호 (등록번호 2 생략), 이하 위 등록상표들을 통틀어 ‘이 사건 등록상표들’이라 한다]을 받은 상표권자이다.
나. 이 사건 등록상표들의 표장은 1896년경 창안된 이래 원고의 가방, 지갑 등 상품에 사용되며 국내외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원고 관련 회사로서 대한민국에 있는 ○○○코리아 유한회사의 2020년 매출액은 약 1조 467억 원에 이른다.
다. 피고는 ‘△△△’라는 상호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가방, 지갑 등의 수선 및 제작업을 영위하면서, 2017년경부터 2021년경까지 가방 소유자들의 요청에 따라 일정한 대가를 받고 이 사건 등록상표들이 외부에 표시되어 있는 가방을 그 소유자들로부터 건네받아 그 원단, 금속 부품 등을 원자재로 이용하여 개수, 크기, 용적, 모양, 형태, 기능 등이 다른 가방과 지갑을 만들어 그 소유자들에게 교부하였다(이처럼 가방 등 제품을 다른 형태의 가방이나 지갑 등 제품으로 변형·가공하는 행위를 ‘리폼 행위’라 하고, 리폼 행위에 의하여 만들어진 제품을 ‘이 사건 리폼 제품’이라 한다).
라. 이 사건 리폼 제품이 만들어지는 구체적인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소유자는 피고가 운영하는 ‘△△△’ 매장에 실물로 전시된 리폼 제품의 샘플이나 피고가 관리하는 ‘△△△’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된 리폼 제품의 사진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선택하거나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제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리폼 제품의 디자인, 형태 등을 결정한다. 그 과정에서 소유자는 피고로부터 리폼 전 제품의 크기 등 한도 내에서 리폼이 가능한 디자인에 관하여 설명을 듣기도 한다.
2) 피고는 소유자로부터 리폼 전 제품을 건네받은 다음, 이를 해체·분해하여 원단이나 부품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부분을 재단하고, 이렇게 재단된 원단이나 부품 등을 이용하여 형태나 크기 등이 다른 리폼 제품을 만들어 소유자에게 교부한다.
마. 원고는 ① 주위적으로 피고의 위와 같은 리폼 행위와 피고가 소유자에게 이 사건 리폼 제품을 인도한 행위가 각각 구 상표법(2025. 5. 27. 법률 제2096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상표법’이라 한다) 제2조 제1항 제11호 (가)목, 같은 호 (나)목에서 정한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여 원고의 상표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며 침해행위의 금지와 손해배상을 구하고, ② 예비적으로 피고의 이 사건 리폼 제품 제작·판매 행위가 국내에 널리 인식된 표지인 이 사건 등록상표들의 식별력이나 명성을 손상하게 하는 행위로서 구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2023. 3. 28. 법률 제1928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1호 (다)목의 부정경쟁행위라고 주장하며 부정경쟁행위의 금지와 손해배상을 구한다.
2. 원심의 판단
원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피고가 이 사건 리폼 제품에 이 사건 등록상표들을 표시한 행위와 이러한 이 사건 리폼 제품을 소유자에게 인도한 행위가 이 사건 등록상표들에 대한 원고의 상표권을 침해한 행위라고 판단하여, 원고의 주위적 청구 중 침해행위 금지 청구를 인용하고 손해배상 청구를 일부 인용하였다.
가. 이 사건 리폼 제품은 그 자체가 교환가치를 가지고 독립된 상거래의 목적물이 되는 물품으로서 상표법 제2조에서 말하는 ‘상품’에 해당한다.
나. 피고는 리폼 전 제품을 완전히 해체하여 그 부품을 절단한 다음 리폼 전 제품의 부품을 원자재로 재활용하여 물리·화학적 처리, 박음질, 부품들의 부착, 상표의 부착 등의 공정을 거쳐, 리폼 전 제품과 비교할 때 제품의 개수, 크기, 용적, 모양, 형태, 기능 등이 심하게 다른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였다.
다. 이처럼 리폼 행위가 새로운 상품의 생산이라고 평가될 경우, 이 사건 리폼 제품에 표시된 상표는 이 사건 리폼 제품을 생산하거나 판매한 자를 표시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피고가 이 사건 리폼 제품의 출처를 원고인 것처럼 이 사건 등록상표들을 표시한 행위는 상표의 사용이고, 소유자에게 이 사건 등록상표들이 표시된 이 사건 리폼 제품을 인도한 행위 역시 상표의 사용에 해당한다.
라. 피고는 가방의 수선, 가공을 업으로 하는 자로서 소유자를 상대로 독립하여 영업으로 이 사건 리폼 제품을 제작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이는 피고가 이 사건 등록상표들을 자신의 업무와 관련하여 사용한 것에 해당한다.
마. 결국 피고는 이 사건 등록상표들을 상표로서 사용하였다. 이 사건 리폼 제품에 표시된 표장은 이 사건 등록상표들과 동일·유사하고, 이 사건 리폼 제품은 이 사건 등록상표들의 지정상품과 동일·유사하다. 피고는 직접 상표법 제2조 제1항 제11호에서 정한 ‘상표의 사용’이라는 불법행위를 한 것이지, 피고에게 리폼 행위를 주문한 리폼 전 제품 소유자의 불법행위를 방조한 것이 아니다.
3. 대법원의 판단
그러나 원심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가. 관련 법리
1) 상표권자의 등록상표가 표시된 상품의 소유자가 개인적 사용을 목적으로 그 상품을 다른 형태의 제품으로 변형·가공하는 이른바 리폼(alteration, customizing 또는 upcycling 등) 행위를 하는 경우, 그 리폼 제품이 상거래에 제공되어 거래시장에서 유통되지 않고 개인적 용도로만 사용되는 한 리폼 제품에 상표를 표시하는 행위 등은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상표권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 한편 리폼 행위를 업으로 영위하는 자(이하 ‘리폼업자’라 한다)가 소유자로부터 개인적 사용을 목적으로 한 리폼 요청을 받아 그에 따른 리폼 행위를 하고 리폼 제품을 소유자에게 반환한 경우에도 리폼업자가 리폼 제품에 상표를 표시하는 행위 등은 원칙적으로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지 않아 상표권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상표법은 상표를 보호함으로써 상표 사용자의 업무상 신용 유지를 도모하여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수요자의 이익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상표법 제1조). 상표는 자기의 상품과 타인의 상품을 식별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표장이고(상표법 제2조 제1항 제1호),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는 업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업무표장(상표법 제2조 제1항 제9호)과는 구별된다. 상표가 표시된 상품은 상거래에 제공되는 물품이어야 함이 전제되고(대법원 1999. 6. 25. 선고 98후58 판결, 대법원 2010. 9. 9. 선고 2010후1459 판결, 대법원 2013. 12. 26. 선고 2012후1415 판결 등 참조), 이러한 상품이 거래시장에서 유통되면 수요자는 상표를 통해 상품의 출처를 식별하게 된다.
이처럼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은 상표가 표시된 상품이 상거래에 제공되어 거래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황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상표의 사용이 상품이 상거래에 제공되는 과정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점은, 유럽연합 상표규정(European Union Trade Mark Regulation) 제8조 제4항, 제9조 제2항의 ‘상거래 과정에서의 사용(use in the course of trade)’ 요건이나 미국 연방상표법(15 U.S.C.) 제1114조, 제1127조의 ‘상업적 사용(use in commerce)’ 요건에서 알 수 있듯이 국제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상표의 사용이 상품의 거래시장 유통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점은, 상표의 출처 식별 기능 등을 보호함으로써 거래시장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유지하고 이로써 그 거래시장에서 수요자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상표법의 경쟁법적 성격에서 비롯된다.
나)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을 이와 같이 해석하는 이상, 어떤 물품에 관한 상표 표시 행위 등이 그 물품을 상거래에 제공하여 거래시장에서 유통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물품을 개인적 용도로만 사용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상표의 사용이 있었음을 전제로 하는 상표권 침해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 이는 개인적 영역에 국한된 상표의 사용은 거래시장에서 보호되어야 할 상표권자의 업무상 신용이나 수요자의 이익은 물론 거래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질서와도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소유자가 구매한 상품을 개인적 사용 목적으로 리폼하는 과정에서 상표 표시 행위 등이 이루어진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다) 상표권자가 국내에서 등록상표가 표시된 상품을 적법하게 양도한 경우, 그 상품에 대한 상표권은 목적을 달성하여 소진되는 것이 원칙이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2도3445 판결 등 참조). 이에 따라 상품 소유자는 상표권의 제약을 받지 않고 소유권 행사의 자유에 기초하여 그 상품을 자유롭게 사용, 수익, 처분할 수 있다. 이러한 소유권 행사의 범위에는 원칙적으로 상품에 대한 리폼 행위도 포함된다. 다만 리폼의 정도가 리폼 전 제품과의 동일성을 해할 정도에 이르러 실질적으로 새로운 제품을 생산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면 상표권 소진 원칙은 적용되지 않으므로(위 2002도3445 판결 참조), 리폼 행위로 인한 상표권 침해가 여전히 문제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리폼 제품이 상거래에 제공되어 거래시장에서 유통되지 않고 개인적 용도로만 사용되는 한, 리폼 과정에서 이루어진 상표 표시 행위 등은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때 상품 소유자가 리폼 전 제품 및 리폼 제품의 소유권을 계속 보유하고 있다면 리폼 전 제품을 리폼 제품으로 변형·가공하는 일련의 리폼 행위 역시 소유권 행사의 자유로서 정당화될 수 있다.
라) 상표법의 관점에서 등록상표가 표시된 상품에 대한 리폼 행위의 허용 여부와 그 범위를 정할 때에는 리폼 행위의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리폼 행위는 다양한 목적과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소유자가 자신의 개성이나 취향을 표현하거나, 폐기 대신 재활용(recycling) 또는 새활용(upcycling)을 통해 제품 수명을 연장하려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리폼 행위는 소유권 행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소비자 후생 증대, 자원 순환이용을 통한 환경적 지속 가능성(environmental sustainability) 확보 등의 가치와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리폼 행위와 관련된 상표권 보호 범위는 상표권자의 이익 외에도 위와 같은 다양한 가치들을 함께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획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개인적 사용 목적의 리폼 행위를 허용하는 것은 리폼 행위를 둘러싼 여러 가치와 이익을 조화롭게 고려한 균형 있는 해법이 될 수 있다.
마) 개인적 사용을 목적으로 한 소유자의 리폼 행위를 허용하는 이상, 이를 소유자가 스스로 리폼 행위를 하는 경우로만 한정할 이유가 없다. 리폼 작업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동, 전문성과 기술력이 요구되어 소유자가 스스로 리폼 행위를 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소유자가 스스로 하는 리폼 행위만 허용하고 제3자를 통한 리폼 행위는 금지한다면, 소유자에게 허용된 리폼 행위의 자유는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못한 채 형식적인 선언에 그칠 우려가 있다. 리폼 과정에서 제3자의 조력을 받거나 제3자로 하여금 리폼 행위를 대행하게 하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소유권에 기초한 정당한 권리 행사의 모습이고, 이를 소유자가 스스로 리폼 행위를 하는 것과 달리 취급할 만한 뚜렷한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
바) 개인적 사용을 목적으로 한 소유자의 리폼 행위에 관한 법리는 리폼업자의 상표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도 반영될 필요가 있다. 소유자의 개인적 사용을 위한 요청에 따른 리폼업자의 리폼 행위가 비록 업으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이는 소유자가 리폼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소유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소유자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결과물 역시 소유자의 개인적 사용 영역으로 귀속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리폼 과정에서는 리폼 전 제품과 리폼 제품의 소유권이 시종일관 리폼 전 제품의 소유자에게 있고, 리폼업자가 수령하는 대가 역시 리폼 제품의 판매 대가가 아닌 리폼 서비스 제공에 대한 대가에 가깝다. 이러한 점에서 소유자와 리폼업자 사이의 거래는 거래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의 거래라기보다는 궁극적으로 소유자의 개인적 사용 영역으로 흡수되는 거래로 평가할 수 있다.
2) 다만 형식적으로는 리폼업자가 소유자의 요청에 따라 소유자의 개인적 사용을 위하여 리폼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보이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리폼업자가 일련의 리폼 과정을 지배·주도하면서 리폼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등 이를 자신의 제품으로서 상거래에 제공하여 거래시장에서 유통되게 하였다고 평가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리폼업자의 리폼 행위에 수반되어 이루어진 상표 표시 행위 등이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여 상표권 침해가 성립할 수 있다. 이러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는 소유자의 리폼 요청 경위와 내용, 리폼 제품의 목적, 형태, 개수 등에 관한 최종적 의사 결정의 주체, 리폼업자가 수령한 대가의 성격, 리폼 제품에 제공된 재료의 출처, 그 재료가 리폼 제품에서 차지하는 비중, 리폼 제품의 소유관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이러한 특별한 사정에 대한 증명책임은 리폼업자의 행위가 상표권 침해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상표권자에게 있다. 그 밖에도 소유자가 개인적 사용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상거래에 제공하여 거래시장에서 유통되게 할 목적으로 등록상표가 표시된 상품에 대한 리폼 행위를 요청하는 등 상표권 침해행위를 할 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데도 리폼업자가 리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행위에 관여하였다면, 그는 상표권 침해에 따른 공동의 법적 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
나. 이 사건의 판단
앞서 본 사실관계를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리폼업자인 피고는 이 사건 등록상표들이 표시된 가방 소유자들의 개인적 사용을 목적으로 그 소유자들로부터 리폼 요청을 받아 그에 따른 리폼 행위를 하고 이 사건 리폼 제품을 그 소유자들에게 반환하였으므로, 이 사건 리폼 제품에 이 사건 등록상표들이 표시되었더라도 원칙적으로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이 있다고 할 수 없어 피고의 리폼 행위가 원고의 상표권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원심은 피고가 형식적으로는 소유자들의 요청에 따라 그들의 개인적 사용을 위하여 리폼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보이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일련의 리폼 과정을 지배·주도하면서 리폼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등 이를 자신의 제품으로서 상거래에 제공하여 거래시장에서 유통되게 하였다고 평가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또는 소유자들이 개인적 사용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상거래에 제공하여 거래시장에서 유통되게 할 목적으로 이 사건 등록상표들이 표시된 상품에 대한 리폼 행위를 요청하는 등 상표권 침해행위를 할 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데도 리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행위에 관여하였는지 등을 살펴보지 않은 채, 피고가 이 사건 등록상표들에 대한 원고의 상표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상표의 사용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취지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4. 파기의 범위
위와 같은 이유로 원심판결 중 주위적 청구에 관한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는 이상, 이와 불가분적으로 결합된 예비적 청구 중 위 파기 부분에 대응하는 부분도 함께 파기되어야 한다.
5. 결론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 중 주위적 청구에 관한 피고 패소 부분과 이에 해당하는 예비적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천대엽(재판장) 오경미 권영준(주심) 엄상필
【피고, 상고인】 피고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봄 담당변호사 김철식 외 2인)
【원심판결】 특허법원 2024. 10. 28. 선고 2023나11283 판결
【주 문】
원심판결 중 주위적 청구에 관한 피고 패소 부분과 이에 해당하는 예비적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특허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난 다음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 등의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에서)를 판단한다.
1. 사안의 개요
원심판결 이유와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 등에 따르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원고는 1994. 7. 1. 표장을 "(표장 1 생략)", 지정상품을 ‘상품류 구분 제18류 숄더백, 핸드백, 비귀금속제 지갑 등’으로 하는 상표등록출원을 하여 1995. 12. 26. 상표권 설정등록[상표등록번호 (등록번호 1 생략)]을 받고, 1983. 8. 5. 표장을 "(표장 2 생략)", 지정상품을 ‘상품류 구분 제25류 지갑, 핸드백 등’으로 하는 상표등록출원을 하여 1985. 1. 17. 상표권 설정등록[상표등록번호 (등록번호 2 생략), 이하 위 등록상표들을 통틀어 ‘이 사건 등록상표들’이라 한다]을 받은 상표권자이다.
나. 이 사건 등록상표들의 표장은 1896년경 창안된 이래 원고의 가방, 지갑 등 상품에 사용되며 국내외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원고 관련 회사로서 대한민국에 있는 ○○○코리아 유한회사의 2020년 매출액은 약 1조 467억 원에 이른다.
다. 피고는 ‘△△△’라는 상호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가방, 지갑 등의 수선 및 제작업을 영위하면서, 2017년경부터 2021년경까지 가방 소유자들의 요청에 따라 일정한 대가를 받고 이 사건 등록상표들이 외부에 표시되어 있는 가방을 그 소유자들로부터 건네받아 그 원단, 금속 부품 등을 원자재로 이용하여 개수, 크기, 용적, 모양, 형태, 기능 등이 다른 가방과 지갑을 만들어 그 소유자들에게 교부하였다(이처럼 가방 등 제품을 다른 형태의 가방이나 지갑 등 제품으로 변형·가공하는 행위를 ‘리폼 행위’라 하고, 리폼 행위에 의하여 만들어진 제품을 ‘이 사건 리폼 제품’이라 한다).
라. 이 사건 리폼 제품이 만들어지는 구체적인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소유자는 피고가 운영하는 ‘△△△’ 매장에 실물로 전시된 리폼 제품의 샘플이나 피고가 관리하는 ‘△△△’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된 리폼 제품의 사진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선택하거나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제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리폼 제품의 디자인, 형태 등을 결정한다. 그 과정에서 소유자는 피고로부터 리폼 전 제품의 크기 등 한도 내에서 리폼이 가능한 디자인에 관하여 설명을 듣기도 한다.
2) 피고는 소유자로부터 리폼 전 제품을 건네받은 다음, 이를 해체·분해하여 원단이나 부품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부분을 재단하고, 이렇게 재단된 원단이나 부품 등을 이용하여 형태나 크기 등이 다른 리폼 제품을 만들어 소유자에게 교부한다.
마. 원고는 ① 주위적으로 피고의 위와 같은 리폼 행위와 피고가 소유자에게 이 사건 리폼 제품을 인도한 행위가 각각 구 상표법(2025. 5. 27. 법률 제2096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상표법’이라 한다) 제2조 제1항 제11호 (가)목, 같은 호 (나)목에서 정한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여 원고의 상표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며 침해행위의 금지와 손해배상을 구하고, ② 예비적으로 피고의 이 사건 리폼 제품 제작·판매 행위가 국내에 널리 인식된 표지인 이 사건 등록상표들의 식별력이나 명성을 손상하게 하는 행위로서 구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2023. 3. 28. 법률 제1928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1호 (다)목의 부정경쟁행위라고 주장하며 부정경쟁행위의 금지와 손해배상을 구한다.
2. 원심의 판단
원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피고가 이 사건 리폼 제품에 이 사건 등록상표들을 표시한 행위와 이러한 이 사건 리폼 제품을 소유자에게 인도한 행위가 이 사건 등록상표들에 대한 원고의 상표권을 침해한 행위라고 판단하여, 원고의 주위적 청구 중 침해행위 금지 청구를 인용하고 손해배상 청구를 일부 인용하였다.
가. 이 사건 리폼 제품은 그 자체가 교환가치를 가지고 독립된 상거래의 목적물이 되는 물품으로서 상표법 제2조에서 말하는 ‘상품’에 해당한다.
나. 피고는 리폼 전 제품을 완전히 해체하여 그 부품을 절단한 다음 리폼 전 제품의 부품을 원자재로 재활용하여 물리·화학적 처리, 박음질, 부품들의 부착, 상표의 부착 등의 공정을 거쳐, 리폼 전 제품과 비교할 때 제품의 개수, 크기, 용적, 모양, 형태, 기능 등이 심하게 다른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였다.
다. 이처럼 리폼 행위가 새로운 상품의 생산이라고 평가될 경우, 이 사건 리폼 제품에 표시된 상표는 이 사건 리폼 제품을 생산하거나 판매한 자를 표시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피고가 이 사건 리폼 제품의 출처를 원고인 것처럼 이 사건 등록상표들을 표시한 행위는 상표의 사용이고, 소유자에게 이 사건 등록상표들이 표시된 이 사건 리폼 제품을 인도한 행위 역시 상표의 사용에 해당한다.
라. 피고는 가방의 수선, 가공을 업으로 하는 자로서 소유자를 상대로 독립하여 영업으로 이 사건 리폼 제품을 제작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이는 피고가 이 사건 등록상표들을 자신의 업무와 관련하여 사용한 것에 해당한다.
마. 결국 피고는 이 사건 등록상표들을 상표로서 사용하였다. 이 사건 리폼 제품에 표시된 표장은 이 사건 등록상표들과 동일·유사하고, 이 사건 리폼 제품은 이 사건 등록상표들의 지정상품과 동일·유사하다. 피고는 직접 상표법 제2조 제1항 제11호에서 정한 ‘상표의 사용’이라는 불법행위를 한 것이지, 피고에게 리폼 행위를 주문한 리폼 전 제품 소유자의 불법행위를 방조한 것이 아니다.
3. 대법원의 판단
그러나 원심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가. 관련 법리
1) 상표권자의 등록상표가 표시된 상품의 소유자가 개인적 사용을 목적으로 그 상품을 다른 형태의 제품으로 변형·가공하는 이른바 리폼(alteration, customizing 또는 upcycling 등) 행위를 하는 경우, 그 리폼 제품이 상거래에 제공되어 거래시장에서 유통되지 않고 개인적 용도로만 사용되는 한 리폼 제품에 상표를 표시하는 행위 등은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상표권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 한편 리폼 행위를 업으로 영위하는 자(이하 ‘리폼업자’라 한다)가 소유자로부터 개인적 사용을 목적으로 한 리폼 요청을 받아 그에 따른 리폼 행위를 하고 리폼 제품을 소유자에게 반환한 경우에도 리폼업자가 리폼 제품에 상표를 표시하는 행위 등은 원칙적으로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지 않아 상표권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상표법은 상표를 보호함으로써 상표 사용자의 업무상 신용 유지를 도모하여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수요자의 이익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상표법 제1조). 상표는 자기의 상품과 타인의 상품을 식별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표장이고(상표법 제2조 제1항 제1호),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는 업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업무표장(상표법 제2조 제1항 제9호)과는 구별된다. 상표가 표시된 상품은 상거래에 제공되는 물품이어야 함이 전제되고(대법원 1999. 6. 25. 선고 98후58 판결, 대법원 2010. 9. 9. 선고 2010후1459 판결, 대법원 2013. 12. 26. 선고 2012후1415 판결 등 참조), 이러한 상품이 거래시장에서 유통되면 수요자는 상표를 통해 상품의 출처를 식별하게 된다.
이처럼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은 상표가 표시된 상품이 상거래에 제공되어 거래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황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상표의 사용이 상품이 상거래에 제공되는 과정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점은, 유럽연합 상표규정(European Union Trade Mark Regulation) 제8조 제4항, 제9조 제2항의 ‘상거래 과정에서의 사용(use in the course of trade)’ 요건이나 미국 연방상표법(15 U.S.C.) 제1114조, 제1127조의 ‘상업적 사용(use in commerce)’ 요건에서 알 수 있듯이 국제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상표의 사용이 상품의 거래시장 유통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점은, 상표의 출처 식별 기능 등을 보호함으로써 거래시장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유지하고 이로써 그 거래시장에서 수요자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상표법의 경쟁법적 성격에서 비롯된다.
나)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을 이와 같이 해석하는 이상, 어떤 물품에 관한 상표 표시 행위 등이 그 물품을 상거래에 제공하여 거래시장에서 유통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물품을 개인적 용도로만 사용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상표의 사용이 있었음을 전제로 하는 상표권 침해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 이는 개인적 영역에 국한된 상표의 사용은 거래시장에서 보호되어야 할 상표권자의 업무상 신용이나 수요자의 이익은 물론 거래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질서와도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소유자가 구매한 상품을 개인적 사용 목적으로 리폼하는 과정에서 상표 표시 행위 등이 이루어진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다) 상표권자가 국내에서 등록상표가 표시된 상품을 적법하게 양도한 경우, 그 상품에 대한 상표권은 목적을 달성하여 소진되는 것이 원칙이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2도3445 판결 등 참조). 이에 따라 상품 소유자는 상표권의 제약을 받지 않고 소유권 행사의 자유에 기초하여 그 상품을 자유롭게 사용, 수익, 처분할 수 있다. 이러한 소유권 행사의 범위에는 원칙적으로 상품에 대한 리폼 행위도 포함된다. 다만 리폼의 정도가 리폼 전 제품과의 동일성을 해할 정도에 이르러 실질적으로 새로운 제품을 생산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면 상표권 소진 원칙은 적용되지 않으므로(위 2002도3445 판결 참조), 리폼 행위로 인한 상표권 침해가 여전히 문제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리폼 제품이 상거래에 제공되어 거래시장에서 유통되지 않고 개인적 용도로만 사용되는 한, 리폼 과정에서 이루어진 상표 표시 행위 등은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때 상품 소유자가 리폼 전 제품 및 리폼 제품의 소유권을 계속 보유하고 있다면 리폼 전 제품을 리폼 제품으로 변형·가공하는 일련의 리폼 행위 역시 소유권 행사의 자유로서 정당화될 수 있다.
라) 상표법의 관점에서 등록상표가 표시된 상품에 대한 리폼 행위의 허용 여부와 그 범위를 정할 때에는 리폼 행위의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리폼 행위는 다양한 목적과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소유자가 자신의 개성이나 취향을 표현하거나, 폐기 대신 재활용(recycling) 또는 새활용(upcycling)을 통해 제품 수명을 연장하려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리폼 행위는 소유권 행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소비자 후생 증대, 자원 순환이용을 통한 환경적 지속 가능성(environmental sustainability) 확보 등의 가치와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리폼 행위와 관련된 상표권 보호 범위는 상표권자의 이익 외에도 위와 같은 다양한 가치들을 함께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획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개인적 사용 목적의 리폼 행위를 허용하는 것은 리폼 행위를 둘러싼 여러 가치와 이익을 조화롭게 고려한 균형 있는 해법이 될 수 있다.
마) 개인적 사용을 목적으로 한 소유자의 리폼 행위를 허용하는 이상, 이를 소유자가 스스로 리폼 행위를 하는 경우로만 한정할 이유가 없다. 리폼 작업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동, 전문성과 기술력이 요구되어 소유자가 스스로 리폼 행위를 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소유자가 스스로 하는 리폼 행위만 허용하고 제3자를 통한 리폼 행위는 금지한다면, 소유자에게 허용된 리폼 행위의 자유는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못한 채 형식적인 선언에 그칠 우려가 있다. 리폼 과정에서 제3자의 조력을 받거나 제3자로 하여금 리폼 행위를 대행하게 하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소유권에 기초한 정당한 권리 행사의 모습이고, 이를 소유자가 스스로 리폼 행위를 하는 것과 달리 취급할 만한 뚜렷한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
바) 개인적 사용을 목적으로 한 소유자의 리폼 행위에 관한 법리는 리폼업자의 상표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도 반영될 필요가 있다. 소유자의 개인적 사용을 위한 요청에 따른 리폼업자의 리폼 행위가 비록 업으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이는 소유자가 리폼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소유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소유자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결과물 역시 소유자의 개인적 사용 영역으로 귀속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리폼 과정에서는 리폼 전 제품과 리폼 제품의 소유권이 시종일관 리폼 전 제품의 소유자에게 있고, 리폼업자가 수령하는 대가 역시 리폼 제품의 판매 대가가 아닌 리폼 서비스 제공에 대한 대가에 가깝다. 이러한 점에서 소유자와 리폼업자 사이의 거래는 거래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의 거래라기보다는 궁극적으로 소유자의 개인적 사용 영역으로 흡수되는 거래로 평가할 수 있다.
2) 다만 형식적으로는 리폼업자가 소유자의 요청에 따라 소유자의 개인적 사용을 위하여 리폼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보이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리폼업자가 일련의 리폼 과정을 지배·주도하면서 리폼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등 이를 자신의 제품으로서 상거래에 제공하여 거래시장에서 유통되게 하였다고 평가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리폼업자의 리폼 행위에 수반되어 이루어진 상표 표시 행위 등이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여 상표권 침해가 성립할 수 있다. 이러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는 소유자의 리폼 요청 경위와 내용, 리폼 제품의 목적, 형태, 개수 등에 관한 최종적 의사 결정의 주체, 리폼업자가 수령한 대가의 성격, 리폼 제품에 제공된 재료의 출처, 그 재료가 리폼 제품에서 차지하는 비중, 리폼 제품의 소유관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이러한 특별한 사정에 대한 증명책임은 리폼업자의 행위가 상표권 침해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상표권자에게 있다. 그 밖에도 소유자가 개인적 사용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상거래에 제공하여 거래시장에서 유통되게 할 목적으로 등록상표가 표시된 상품에 대한 리폼 행위를 요청하는 등 상표권 침해행위를 할 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데도 리폼업자가 리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행위에 관여하였다면, 그는 상표권 침해에 따른 공동의 법적 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
나. 이 사건의 판단
앞서 본 사실관계를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리폼업자인 피고는 이 사건 등록상표들이 표시된 가방 소유자들의 개인적 사용을 목적으로 그 소유자들로부터 리폼 요청을 받아 그에 따른 리폼 행위를 하고 이 사건 리폼 제품을 그 소유자들에게 반환하였으므로, 이 사건 리폼 제품에 이 사건 등록상표들이 표시되었더라도 원칙적으로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이 있다고 할 수 없어 피고의 리폼 행위가 원고의 상표권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원심은 피고가 형식적으로는 소유자들의 요청에 따라 그들의 개인적 사용을 위하여 리폼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보이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일련의 리폼 과정을 지배·주도하면서 리폼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등 이를 자신의 제품으로서 상거래에 제공하여 거래시장에서 유통되게 하였다고 평가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또는 소유자들이 개인적 사용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상거래에 제공하여 거래시장에서 유통되게 할 목적으로 이 사건 등록상표들이 표시된 상품에 대한 리폼 행위를 요청하는 등 상표권 침해행위를 할 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데도 리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행위에 관여하였는지 등을 살펴보지 않은 채, 피고가 이 사건 등록상표들에 대한 원고의 상표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상표의 사용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취지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4. 파기의 범위
위와 같은 이유로 원심판결 중 주위적 청구에 관한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는 이상, 이와 불가분적으로 결합된 예비적 청구 중 위 파기 부분에 대응하는 부분도 함께 파기되어야 한다.
5. 결론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 중 주위적 청구에 관한 피고 패소 부분과 이에 해당하는 예비적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천대엽(재판장) 오경미 권영준(주심) 엄상필
참조조문
[1] 상표법 제1조, 제2조 제1항 제1호, 제11호, 제108조 제1항 / [2] 상표법 제1조, 제2조 제1항 제1호, 제11호, 제108조 제1항, 민법 제760조
참조판례
[1]대법원 1999. 6. 25. 선고 98후58 판결(공1998하
[1]1517)
[1]1218)